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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Scape

없어져 버린 술집에 대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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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기억에 의존해서 적는 글이라 디테일은 많이 혹은 조금 틀릴 수도 있습니다.


1


SAL 이라는 술집이 있었습니다.
청계천 광교 부근에 있는 어느 허름한 건물에.
슬슬 해가 지고 있었으므로, [재성 형]과 저는 술을 마실 곳을 찾아서 헤메었습니다.
2층인지 3층인지에 있어서 고개를 들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간판도 그리 눈에 뜨지 않았던, 그 SAL 이라는 술집에 젊은 술꾼(...당시 기준) 둘이 들어가게 된 것은 그저 우연의, 우연의, 우연의, 우연의 일치였던 것이죠.


2


사실 처음에는 계단으로 올라가니 아직 안 열었는지 문이 잠겨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우리는 에이~를 외치며 돌아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거리를 조금 더 걷다가 보니... 어찌된 일인지 다시 그 SAL이라는 술집 앞이군요.
이번에는 문이 열려있었고, 우리는 다소 기뻐하며(술꾼은 술을 마실 수 있다고 하면 기뻐하는 법)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어느 술집이 안 그렇겠는가 싶지만은, 뭐 안 그런 술집도 있겠지만은, 사연 많아 보이는 긴 머리를 가진 여주인이 앉아서 술을 팔고 있었습니다.
어찌저찌 단골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것이 되어서 종종 들러 술병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 SAL이라는 술집을 찾아낸 것인지, 술집이 우리를 찾아낸 것인지 모르겠네요.


3


거리를 배회하다가 밤이 오면 SAL에 들러 들러 술병을 기울이기를 며칠인지 몇달인지 좀 하다보니, 가게가 문을 다는다고.
그 음악가로 유명한 정씨 성을 가진 집안에서 이 건물을 샀다던가 팔았다던가.
그래서 가게를 그만한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새 건물주께서 보증금이니 월세를 올려 받으려고 하신 것이겠지요.
흔히 있는 일이죠.
이명박이 청계천에 인공 도랑을 내놓아서, 안 그래도 그 주변의 땅값이 솟구치고 있었던 때였으므로 어디서 당장 수천의 돈을 구하지 않는 이상 가게를 접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사실 단골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것이라고 이야기 했지만, 매일같이 가지는 않았으므로 쎄마이-단골 쯤으로 하겠습니다.
우리는 쎄마이 단골이었으므로 가게를 옮겨야 한다는 둥의 이야기는 언듯선듯 살짝 들었던 것 같기도 한데...
술 마시고 들은 이야기가 귀에 들어가겠어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뭐 언제 닫는지 그런 건 모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술을 마시러가지 뭐 관청 직원도 아니것이 그런 것 까지는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습니다.


4


아-무 생각없이 또 쎄마이 단골인 우리는 다시 SAL을 찾았습니다.
음, 어, 오늘이 영업하는 마지막 날이라고 합니다.
그 술집에서 서식하던 단골 몇도 소식을 미리 알았는지 신나게 들이키고 있더군요.
주인까지 해서 대여섯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술을 마셨습니다.
그렇게해서, 우연히 "찾아낸" 그 술집의, 마지막을 또 우연히도, 지켜 보게 되었습니다.
사연 많아보이던 여주인은 엉엉 울었습니다.
우리는 새벽까지 술을 마셨습니다.
우리는 새벽까지 술을 마셨습니다.
우리는 새벽까지 술을 마셨습니다.


5


술집 하나가 이렇게 또 사라지는가 싶었죠.
그냥 저냥 생각나면 가던 곳이 없어지려니 술꾼 입장에서도 처지가 딱합니다.
SAL이 있던 곳을 지나면서 어 아직 간판은 남아있네, 라고 하며 아쉬워하기를 또 며칠인지 몇달인지가 지났습니다.
좀 지난 후, SAL이라는 이름을 받아서 홍대 쪽으로, 주인은 살짝 바뀌었지만, 가게는 옮겨갔습니다.
종로에서 있었던 단골 몇도 가게를 따라왔습니다.
단골 한 사람은 어느 책을 만드는 곳의 편집장이라는 분이셨는데, 신나게 마시고, 알 수 없는 언어로 자기만의 독백을 하곤 했습니다.
저는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술집 주인은 그걸 해독 할 수 있었습니다.
아 물론 당연히 알아들었으니 술을 팔 수 있었겠지요.
지금은 잘 계시려나요.


6


재성 형은 좀 멀어지게 되었지만, 저는 더 가까워지는 바람에... 쎄마이 단골이 거의 진짜... 뭐랄까 얼모스트 단골이 되었죠.
많은 일들이 있었고, 문자 그대로 많은, 많은.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러던 어느 날, 홍대 앞 SAL도 결국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딱히 홍대에 갈 일이 없는 사람을 홍대 앞으로 가게 만들었던 SAL이 없어지고 난 다음부터는, 홍대 쪽으로는 발걸음을 전혀 하지 않게 됐습니다.


7


이제는 10년은 더 넘은 일이니 오래전 일이라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겠지요.
그냥 심심하면 들어가서 놀 수 있었던 그런 술집이 없어지니 참 슬프더라구요.
요즘은 건강도 나빠지고 해서 술을 거의 마시지 않게 되어버리다보니, 단골 술집이라는 게 생길 수가 없는 처지입니다.
설령 생긴다해도, 예전 같지는 않을 것 같고요.


8


새로운 것에 도전도 해보고 해야 하는데, 이제 늙은 모양입니다.
늙으면 그냥 비교를 하게 됩니다.
하기 싫어도 그냥 자연스럽게, 예전에 이랬는데. 저랬는데. 좋았는데.


9 겨울에는 추웠습니다. 난로 피워놓고 있으면... 뭐 술 마시면 안 춥잖아요? 괜찮아집니다.


저 어두컴컴하고 추운 곳에서, 아니 정말 손을 호 불면 입김이 나오는 곳에서, 뭐가 좋다고 술을 그렇게 마셨었는지.
여름에는 더웠나?
기억이 나질 않네요.
더웠겠죠.


10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나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저녁에", 김광섭, 19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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