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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sip/Hell Korea

한국전쟁(6.25 전쟁) 59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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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전쟁에서 숨을 거두신 모든 이들에게 묵념을...

전쟁없는 저 세상에서 편히 영면하시길 빕니다.

6.25 전쟁이라는 것은 사실 여러가지로 의미가 큰 전쟁이었다.

물론 당사국인 우리는 국토가 완전히 파괴되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북한 지역 역시 미군의 맹폭으로 인해 말 그대로 전 국토가 허허벌판이 되었다.

위키 백과  : 한국전쟁

http://ko.wikipedia.org/wiki/%ED%95%9C%EA%B5%AD_%EC%A0%84%EC%9F%81 

세계戰史를 살펴볼 때, 6.25전쟁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일단 한국전쟁부터 현대전으로 분류한다.

•헬기가 전장에 최초로 투입됐다.

•제트 추진 방식 전투기(제트기) 끼리의 최초의 공중전(dog fight)이 벌어졌다.

•2차 대전 이후 벌어진 최초의 전면전이었다.

•의료지원국이나 비공식적이지만 전쟁을 지원한 국가까지 합하면 27개국이 참전했다.

•2차 대전 당시에 남아있던 다소 전근대적인 전략, 전술에 대한 반성이 한국전에 반영되어, 현대적 전략과 전술이 일부 사용됐다.

•세계전사에 유래가 없는 땅따먹기 전쟁(제한전)이 최초로 벌어졌다.

•한국전쟁에서 얻은 교훈은 고스란히 베트남전으로 이어진다.

 한국전쟁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이은, 세 번째 원자탄 실전투입이란 결과를 낳을 뻔 했다.

중국의 개입으로 장진호 전투에서 궤멸적 피해를 입었다는 보고를 받은 트루먼 대통령은 원자탄 사용을 고려했다.

1950년 11월 30일 기자회견에서 은근한 협박조로 트루먼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원자폭탄 역시, 우리가 보유한 무기체계 중 하나이다"

(=우리 원자탄 있거덩?)

만약 이것이 사용되었다면 전쟁의 상흔은 더욱 깊고 오래 갔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내전이라고 하는데, 이는 수구똘빡 단체의 주장으로, 당시 북한과 남한은 모두 정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국가와 국가 간의 전쟁으로 봐야한다.

(그러나 남북한 모두 헌법에서는 상대를 국가로 규정하고 있지 않았다. 자기들만 유일한 합법정부라 주장)

전쟁의 원인은 김일성의 개인적 야욕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많은 기록으로 뒷받침되는 정설이다.

물론 간접적인 원인은 제대로 된 탱크 한대도 없던 허약한 국방력과 무능한 이승만 정권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전쟁은 김일성이 일으킨 것이었으나, 전쟁 당시 이승만이 벌인 행위는 반국가적이었으며 국가원수라는 직책에 걸맞지 않는 시정잡배 수준의 것이었다.

처칠은 2차 대전 당시 벌어졌던 항공전 당시, 독일의 맹폭에도 불구하고 수도 런던의 지하벙커를 떠나지 않았다.

당시 처칠이 머무르고 있던 지하벙커는 허약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에 독일군 폭탄에 직격당하면 그대로 무너질 수 있었지만,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처칠은 그 지하벙커에서 라디오연설을 계속하며 督戰의 메시지를 전했다.

드골은 프랑스 파리를 수복하고 그를 환영하는 행사에서 총성이 울려 모든 사람이 당황하는 와중에도, 어깨와 허리를 꼿꼿이 펴고 당당하게 걸었다.

나중에 한 미국기자는 이렇게 적었다.

"그 때 프랑스 시민들은 비로서 자신들의 지도자가 나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히틀러는 비록 독재자이며 2차대전을 일으켜 직, 간접적으로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을 사상시킨 천하의 대악당이었지만, 수도 베를린에서 끝까지 저항하다 끝내 자결한다.

이승만은 시민을 버리고 도망갔다.

서울 시민들에게 서울은 안전하다는 방송을 하고 있을 때 자신은 이미 피난 열차에 올라 도망가고 있었다거나, 한강 철교를 두동강내어 시민들을 고립시킨 사건 등은 유명하다.

더군다나 한강철교를 폭파하면서 1,000여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의 책임을 현장지휘관에 돌려, 당시 폭파를 지휘했던 공병감 최창식 대령을 사형에 처하는 만행도 서슴지 않는다.

게다가 나중에는 더욱 한심한 짓을 저지른다.

2차대전 당시 드골은 더욱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미군에 끈질기게 병력 지원을 요청했고, 르끌레르가 이끄는 자유 프랑스 사단(미군 소속이나 프랑스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을 움직여 독단으로 파리를 해방시켰다.

쥐뿔도 가진 것 없었다는 상황은 비슷했고, 상황도 절망적이었지만 드골은 끝내 프랑스의 자존심을 세웠다.

그러나 이승만은 전시작전권을 미국에 바친다. 

어쨌거나... 지도자는 그 나라를 고스란히 대변하는 아이콘이다.

당시 남한은 이승만 정도의 지도자 밖에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는, 이런 짓을 하고 있다.

중구 일대의 버스 정류장의 사진들이다. 모두 노선이 다르다.

전부 전에는 없었던 '이화장'을 정류장 이름에 스티커로 병기했다.

또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가장 처음으로 한 일은 저 사진처럼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으로 만든 것 이었다.

...이처럼 이명박 정권은, 뉴라이트 계열의 사관을 그대로 받아들여, 온통 이승만을 국부로 받들어 뫼시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거야말로 지록위마, 침소붕대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지 이런 식으로 왜곡하면 나중에 후세가 뭐라고 말할 것 같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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