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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sip/Hell Korea

한 장의 사진이 갖는 파괴력

1960년 퓰리처 상 수상. 나가오 야스시 作

 

1960년 퓰리쳐상을 수상한 사진입니다.

나가오 야스시라는 당시 마이니치 신문사에 근무하던 사진기자가 촬영한 것으로, 뭐 딱히 설명이 더 필요없을 정도로 잘 나온 사진입니다.

사진에 얽힌 이야기를 잠깐 풀어볼까요...

토쿄 하비야홀, 다음달에 있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당 합동 유세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사회당 당수인 이네지로 아사누마가 연단에 올랐습니다.

그는 자민당을 비판하는 내용의 연설을 하고 있었죠.

그런데, 홀 입구 쪽에서 일군의 사람들이 나타나 소리를 지르며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사진기자들은 모두 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했죠.

나가오 기자는 남은 필름이 얼마 없었기 때문에 자리를 옮기지 않고 연단 부근에서 기다리기로 합니다.

현장이 어수선해진 그 순간, 한 17세 소년이 연단으로 뛰어들어 이네지로 사회당수를 습격합니다.

필름이 모자라 연단 주위에 남아있던 나가오 기자는 운 좋게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습니다.

첫번째 공격을 가한 다음, 칼을 뽑아 심장을 노려 재차 공격하는 순간을 촬영한 것이라 합니다.

피해자인 이네지로 당수는 후송 중 사망하였습니다.

배후에 야쿠자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죠.


사진으로 그는 일본 최초의 퓰리처상 기자라는 영예를 얻게 되었지만, 야쿠자들의 보복이 두려워 한동안은 숨어지냈다고 합니다.

이후 사진 욕심에 마이니치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전업했지만, 이 사진 이상의 업적은 남기지 못했고...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다 어느 날 자택에서 숨져있는 것을 친구가 발견하였습니다. 향년 80세.


이 사진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다름아닌 중앙일보 조용철 기자의 사진 때문입니다.

사진의 관련기사는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해당 언론사와의 저작권 문제가 있을 수 있으므로 사진을 직접 올리지는 않겠습니다).

조준호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의 머리채를 뒤에서 잡고 있는 한 여성의 모습입니다.

아마도 머리 위로 카메라를 들고 여러장을 "긁어서" 그 중 한장에서 건진 사진 같습니다.

지금 통합진보당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사진이죠.

특히 여성의 표정은 정말 순수하고 진정성이 넘쳐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론을 꺼내자면... 이 사진에 대해서 논란이 있습니다.

이른바 초상권 문제죠(저 습격사진을 꺼내 놓은 이유를 눈치빠른 분들은 이미 알아채셨을 겁니다. 야쿠자 습격 사진과 머리끄댕이 사진은 여러모로 닮은 꼴이기도 하구요).

어떤 분은 저 사진을 돌리는 것이 개똥녀 사진을 돌리는 것과 같은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하시는데요, 그런 문제와는 명백히 동떨어져 있는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통합진보당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公黨"입니다.

통합진보당 당적을 가진 국회의원이 존재하며, 시민들은 그들의 활동을 감시할 책임과 자격이 있습니다.

통합진보당 당대회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쏟는 것은 그런 이유입니다.

또한 소위 "진보"진영에서 가장 덩치가 큰 집단이기도 하기 때문에(저는 진영논리를 혐오하지만, 실제 존재하고 있는 것을 부정 할 수는 없으니...), 진보연하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최근 벌어지고 있는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해서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진은 당대회에서 당대표가 폭력에 희생되는 모습을 날 것 그대로 잡아냈습니다.

보도사진으로서 공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으며, 이는 초상권 침해에 대해서 충분한 조각사유가 됩니다.

현행법은 공적인 목적의 사진이나 언론매체에서 쓰이는 사진에는 초상권의 범위를 축소시켜 적용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사생활을 다룬 사진이었다면 분명히 문제겠지만, 저 곳은 개인의 내밀한 사생활을 논하는 곳이 아니고, 공당의 당원들이 모인 당대회장이죠...

서울지법 판례에 의하면 "기자회견, 시위 연설 등 공적인 논쟁에서 자신의 주장을 공중이나 언론에 홍보하기 위해 타인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행위를 한 경우 초상이 촬영되거나 공표되는 것에 대해 묵시적으로 승낙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저 사진에 대한 논의가 통합진보당의 파행사태가 아닌, 가해자 개인의 신상문제 같은 엉뚱한 곳으로 진행된다면, 당연히 그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고, 그래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 문제를 환기시키는 데에 이 사진이 쓰인다고 해서, 초상권 침해와 조리돌림이라는 비난을 하는 것은 지나친 언사라는 생각을 합니다.

만약 그런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저 퓰리쳐상을 받은 사진은 17세 소년의 앞날을 위해(여담이지만 구치소에서 자살했습니다. 사건은 미결로 남았죠) 얼굴에 검은 띠나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야 하겠죠.

그리고 많은 보도사진들이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흐릿한 이미지들이 될 것입니다.

당연히, 쓸모가 없는 사진이 될 것입니다.


찍힌 사진은 여러마디의 글보다 그 한장으로 많은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번 머리끄댕이 사진이 그런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진이 소비되는 방식에 우려 할만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부분은 사진의 소비자들이 주체적으로 경계하면 될 것입니다.

우리가 글로는 미처 전달하지 못하는 부분을 저 사진들은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름모를 소년이 휘두른 칼에 찔렸다"

"이름모를 여성에게 머리채를 잡혔다"

와, 저 사진들을 직접 보는 것과는, 어떻습니까.

다르죠?


참고로, 초상권 관련해서는 제가 옛날에 쓴 글이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국내법에는 초상권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판례로만 존재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