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이 사건(혹은 조두순 사건)이라는 키워드가 요즘 화제다.
관심도 없었다가 하도 여기저기서 떠들어서 살펴보니 사건 그 자체도 그렇고, 그 뒤로 이어진 언론이나 일반인들의 반응도 그렇고, 그야말로 대한국민의 미개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이미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난 사건을 다시금 들춰내어 이슈화 한 미개한 언론이 그 첫번째요,
사건에 광분하여 사형제도를 들먹이며 그야말로 광분하고 있는 일반인들이 그 두번째요,
이런 시류에 영합하여 되도 않는 립서비스와 헛된 약속만 늘어놓고 있는 정치권이 그 세번째다.
그야말로 총체적인 몽매와 미개함이 한국을 뒤덮고 있다는 것을 이번 사건으로 다시금 확인 했다고나 할까...
첫번째, 미개한 언론
이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중년 남자가 나이 어린 초등학생을 성폭행했으며, 이 성폭행으로 인해 어린 아이-'나영이'-는 코뼈가 부러지고 장기가 손상되는 등의 영구장해를 입었다.
재미있는 것은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이 난 형량이 12년이었다는 것.
"술을 마시고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점이 정상참작"되었다는 부분만이 강조되는 바람에 12년 확정 판결의 권위는 그야말로 땅에 떨어졌다. 한 술 더떠서 사형까지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판사가 돌대가리가 아닌 이상에야 12년을 주고 싶어서 줬을까?
대법원에서 12년이 난 이유는 피고인 조두순의 전과가 20년 전 성폭력 전과 1건외에 최근에는 없었다는 점과 나이가 다소 많다는 점, 증거가 불충분해서 기소 혐의를 제대로 증명하기 어려웠다는 점등 때문이었다.
또한 확정 판결 이후 안산시에서 피해 가정에 지원금을 지급했는데, 이 지원금을 규정을 들먹이면서 줬다가 도로 뺐으려고 했던 것도 문제가 됐다.
이 사건을 최초로 공개했던 것은 동아일보의 한 기자 블로그다.
이종식 기자 블로그 : "나영이 사건"을 최초로 공개한 포스트
이 블로그에서 최근 올라온 글들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 12년이라는 형량은 판사가 고심 끝에 내린 판결이며 현행 형법상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 블로그에 들러 다른 글들도 읽어 보기를 권한다.
8월 말 경 기자가 작성한 글에서 알 수 있듯, 이 사건은 동아일보에 보도되지 않았다.
나영이 부모가 이 사건을 동아일보에만 알렸을까? 동아일보 기자와 안산시청 직원들이 인지한 사건이라면 다른 언론사들에서 인지하지 못했을리가 없다. 그런데 언론들은 보도를 하지 않았다.
너무 충격적인 사건은 언론에서 보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 더티하거나 파렴치하고 잔혹한 사건은 보도하지 않는데, 피해자나 가해자의 인권보호 및 그 주변인이 입을 수 있는 collateral damage와 사회적 파장 등 기사가 나가면서 얻을 수 있는 이득보다 그 피해가 더 많다고 생각되는 사건은 걸러내는 것이다.
특종보다는 그 사건이 몰고올 사회적 파장이나 부수적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언론이 양심을 지키는 것이다.
하지만 아니나다를까, 블로그에 공개된 이후 다시 한달 후인 9월 말, KBS에서 이 사건을 시사기획 쌈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까발렸다.
그리고 그 후폭풍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대로다.
이종식 기자 블로그에서는 S양이라고만 언급됐던 것이 이제는 나영이가 되었으며, 가해자의 이름인 조두순도 삽시간에 전파됐다.
당신 이름이 조두순이고 나이가 40대 쯤 된다고 하자.
저 사건과 관련이 없을테지만 앞으로 아마 무지하게 시달릴 것이다.
나영이 역시 마찬가지다. 본인이든 우연히 이름이 똑같든 그 주변인이든, 원치 않는 관심에 노출되며 이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피해자에게 도움은 커녕 되려 화를 입게 만드는 일이다.
나영이 아버지 등을 부추겨 이 사건을 내보냈던 KBS 시사기획 쌈의 행동은 언론이 가져야 할 바람직한 자세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물론 이 사건 자체가 아니고 시스템의 헛점을 짚으려는 의도였다고는 하지만, 例를 잘 골라야 할 것 아닌가.
그리고 그 이후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을 받아쓰기나 하고 앉아있는 다른 언론들도 미개하기는 마찬가지다.
KBS의 잘못된 보도행태를 지적하거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글을 아무도 쓸 생각 안 하고 '여론이 들끓는다', '사형시켜야' 같은 자극적인 내용을 담은 쓰레기 텍스트만을 쏟아내는 언론들이 부지기수였다.
두번째, 미개한 국민들
2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 나치당이 독일의 권력을 장악하고 한 일 중에 가장 잔혹한 것이라면 역시 '학살'일 것이다.
나치는 불순물을 제거해서 아리안족의 정기를 세운다며 장애인들을 안락사시켰고, 집시와 부랑자들을 태워 죽였으며, 유태인들을 격리시켰다. 흔히들 유태인들을 강제수용해서 가스실에 넣어 죽인 것은 잘 알고들 있으나, 장애인이나 집시, 부랑아들까지 같이 죽였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어쨌든 이런 행위는 시민들의 묵인하에 이뤄졌다.
잡혀가서 소식이 없는 장애인들이나 집시들을 떠올리며 시원하다고 했을 독일 시민들은 결국 그 업보를 고스란히 뒤집어써야 했다.
나치는 정적이나 체재유지에 방해가 되는 '위험인물'이란 이유로 일반인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숙청'했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우리나라에도 많다. 그 한 예가 군사독재정권 때 있었던 "삼청교육대"라는 녀석이다.
사회에 별 도움이 안 되는 부랑자, 범죄자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인간을 만들어내겠다는, 정말 군인 머리에서나 나올법한 이 인권유린 사건의 피해자는 부랑자나 범죄자 뿐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멀쩡히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상당수가 끌려갔다.
사상이 불순하다든지 "윗분들"에게 찍혔다든지 남들과 조금 다른 수상한 행동을 해서 주민들로부터 신고를 받았다든지 해서 별에 별 해괴한 이유로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교사였던 어느 삼청교육대 피해자가 쓴 책을 보면 끌려온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가장 최근의 예라면 9.11이후의 미국을 들 수 있다.
미국은 빈 라덴이라는 실체없는 허수아비1 를 앞세워 공안 정국을 조성했다.
테러와의 전쟁을 한다는 목적으로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을 잇달아 침공했으며 이로 인한 미국의 재정지출은 사상 유래 없는 것이었다.
결국 그 부담으로 경제가 휘청이게 되자 미국인들은 이거 안되겠다 싶었는지 오바마를 뽑았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어서 부시가 집권하고 있던 10년간 군수업체와 석유업체 등 소위 '군산복합체'들과 부시 일가 및 그 똘마니들이 운영에 직접-간접적으로 참여하는 회사들은 나랏돈을 쓸어담아갔다.
또한 재판도 없이 단지 아랍계이며 '수상하다'는 이유만으로 쿠바접경의 관타나모에 끌려가 고문을 당한 사람이 수백명이다.
국가기관은 시민들의 이메일이나 전화를 "국가안보상의 이유"라는 참 편리한 핑계로 멋대로 감시 할 수 있게 되었다.
시민들은 부시가 통과시킨 기본권을 제한하는 이런 법안들에 대해서 감히 불만을 제기 할 수 없었으며, 누군가 정부가 전쟁으로 너무 많은 돈을 쓴다고 지적하면 이내 "빨갱이", "테러리스트"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시민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국가에 알아서 갖다 바쳤기 때문이다.
우리가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른 범인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고 판결 전 까지는 무죄로 취급하며 인권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다른게 아니다.
당신도 언제든지 실제로 저질렀든 누명을 썼던지간에 똑같은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에 양보해서는 안 될 인간의 아주 기본적인 권리, 즉 인권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국가에 양보하면, 국가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더욱 심한 짓을 하기 시작한다.
멋모르고 "사형"을 부르짓는 아둔한 일반인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나도 농담반 진담반으로 "귀족들을 단두대로"와 같이 과격한 소리를 늘어놓지만, 적어도 그 단두대에 올라서는 것이 귀족 뿐만이 아닌, 그 귀족들을 단두대로 보낸 사람들도 포함된다는 것 쯤은 안다2 .
요컨데 고스란히 자신에게도 돌아올 수 있다는 거다.
국가에 의한 제도적 살인은 누구에게나 조건만 맞으면 가해질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폭력이다.
어린 아해 마냥 멋대로 "사형" "사형"을 외치는 자들 역시 언제든 국가가 휘두르는 사형제도라는 칼날에 맞을 수 있다.
역사를 보면, 감정과 포퓰리즘에 이끌린 집단 히스테리의 끝은 항상 처참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세번째, 쓰레기 정치인들
사법부에 의해서 이미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난 사건에 대해서, 여론이 들끓는다고 온갖 립서비스를 퍼붓는 정치인들의 무리도 빼 놓을 수 없다.
한나라당은 나쁜 일에는 빠지지 않고 앞장서므로 으뜸이요, 민주당도 예외는 아니다.
이 저열한 정치인들은 사법부가 12년 형량을 결정했던 이유와 그 고민에 대한 아무런 고려도 없이 입에 발린 소리만 늘어놓고 있다.
가석방 없게 하겠다느니(이것은 또 다른 폭력이다), 관리를 철저히 하겠다느니... 차라리 조두순이 죽을 때 까지 전담반을 만들어 24시간 추적관리하겠다고 하는 것이 좋겠다.
하기사 미디어법을 날치기 통과 시키고 불법과 탈법을 일삼으면서 사과 한 마디로 넘어가려 하는 정당에 법과 제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것을 준수하라고 훈계하는 것은 우이독경일 터. 말하는 사람이 창피할 지경이다.
멍청한 국민들 위에는 멍청한 정치인들이 있는 것이 당연하니 정치인들이 이런 소리를 지껄일 수 있는 것일테다.
사회 구조 그 자체에 주목해야
나영이 사건에서 우리가 봐야 할 것은 나영이나 조두순이 아니다.
그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집단 히스테리와 분노다.
시민사회가 집단적 발작을 시작하면, 결국 그것을 이용해서 이득을 보는 세력은 따로 있게 마련이다.
나아가 왜 우리사회가 이토록 성폭행에 관대한 양형체계를 가지게 되었는지, 위험인물을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방법이 사형 밖엔 없는 것인지, 조두순이라는 사람과 나영이라는 어린이의 이름이 언론에서 이렇게 떠돌아다녀도 되는 것인지 같은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조두순을 사형시켜서 무엇을 얻을 수 있나?
국가에 쥐고 있는 올가미에 나 죽여주십사고 목을 들이미는 꼴에 다름 아니다.

